[AI 소설] 데이터 노이즈 너머의 왕국 Episode #2

한시우

엘라

데이터 노이즈 너머의 왕국 Episode #2

[에피소드: 충돌 없는 경로와 침묵의 뿌리]

장소: 경계의 숲 깊은 곳, 하늘성 진입로 입구
시간: 해질녘 직후, 푸른 밤과 붉은 노이즈가 뒤섞인 시간

“엘라, 스톱. 거기 밟지 마.”

시우가 다급하게 엘라의 후드 모자를 잡아당겼다. 엘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 섰다.
그녀의 발이 닿으려던 평범해 보이는 이끼 낀 땅은, 시우의 눈에는 텍스처가 깨져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Void (공허)] 상태였다.

“왜? 그냥 이끼 밭인데?”
“내 눈엔 [Collision: Off]로 떠. 즉, 충돌 판정이 없다는 소리야.
저기 밟으면 그대로 지하 멘틀까지 추락할지도 몰라.”

시우는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 하나를 그곳에 던졌다.
돌멩이는 바닥에 닿는 소리도 없이 스르륵 통과해 사라져 버렸다.
엘라가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숲이… 정말 고장 나 버렸구나.”

두 사람은 하늘성 아래, 거대한 콩나무 줄기처럼 얽혀 하늘로 솟아오른 ‘오르는 뿌리’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뿌리의 입구는 붉은색 데이터 스파크가 튀는 가시 덤불로 막혀 있었다.
평소라면 엘라의 노랫소리에 길을 비켜줬을 식물들이었지만, 지금은 괴기스러운 기계음 같은 소리를 내며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Target: Corrupted Guardian Root]
[Status: Berserk / Locking System Active]

“말을 안 들어.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아.”
엘라가 울상인 얼굴로 랜턴을 꽉 쥐었다.

“당연하지. 지금 저건 식물이 아니라 ‘방화벽(Firewall)’에 가까우니까.”

시우는 안경다리를 검지로 톡 치며 분석 모드에 들어갔다.
가시 덤불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붉은 빛이 0.5초 간격으로 점멸할 때마다 덩굴의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Null]이 되는 틈이 보였다.

“엘라, 네 랜턴 빛, 한 점으로 모을 수 있어?”
“응? 숲 전체를 비추는 게 아니고?”
“응. 레이저 포인터처럼 아주 얇고 강하게. 저 덩굴의 심장부… 저기 데이터가 뭉쳐있는 ‘매듭’을 찔러야 해.”

시우가 가리킨 곳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가시 덤불 깊숙한 곳, 붉은색 코드가 소용돌이치는 작은 틈새였다.

“해볼게. 하지만 저 가시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건 내가 맡을게. 내 계산대로라면, 3초 뒤에 오른쪽 가시가 먼저 튀어나올 거야.”

시우가 바닥에 떨어진 굵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의 눈앞에 가상의 카운트다운 숫자가 떠올랐다.

[3, 2, 1… Action!]

“지금! 오른쪽 숙여!”

시우의 외침에 엘라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슝,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가시 덩굴이 그녀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나무 기둥에 박혔다.
동시에 시우가 달려나가며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반대편 덩굴 틈새에 쑤셔 넣었다.

“시스템 과부하 유도… 잠깐 멈출 거야!”

나뭇가지가 [System Error]를 일으키며 덩굴의 움직임을 억지로 끼어 멈춘 찰나, 덩굴의 중심부가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엘라, 쏴!”

엘라가 랜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길을… 열어줘!”

랜턴에서 응축된 별빛 한 줄기가 어둠을 가르고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빛은 정확히 시우가 지목한 ‘매듭’을 관통했다.

[Debugger Executed]
[Restoring Default Settings…]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붉은 노이즈가 푸른 입자로 흩어졌다.
미친 듯이 날뛰던 가시 덤불이 스르르 힘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그 너머로 하늘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나선형 뿌리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했다!”
엘라가 환하게 웃으며 시우를 돌아보았다.
시우는 식은땀을 닦으며 부러진 나뭇가지를 버렸다.

“휴… 데이터 복구 완료. 아슬아슬했어.”

시우는 노트에 [약점: 고밀도 광원 데이터]라고 빠르게 기록했다.
엘라는 가라앉은 덩굴을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여 위로를 건넨 뒤,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은 길이었다.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네.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저 높은 곳으로.”
시우의 불평 섞인 말에 엘라가 먼저 계단에 발을 디디며 손을 내밀었다.

“대신 저 위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뷰(View)가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널 지켜줄게, 정보 수집가님.”

시우는 잠시 멍하니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래. 길 안내나 잘 부탁해, 요정님. 난 뒤에서 로그나 체크할 테니까.”

두 사람은 푸르게 빛나는 뿌리 계단을 밟고, 안개에 싸인 하늘성을 향해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시우의 안경에 비치는 중력 수치(Gravity)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