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한시우

엘라

데이터 노이즈 너머의 왕국 Episode #3
[에피소드: 부유하는 오류와 구름 위 무중력]

장소: 하늘성 진입로, 구름층 바로 아래 (상공 3,000m 추정)
시간: 밤, 달빛과 디지털 네온이 혼재된 하늘
“속이 울렁거려… 이 구역, 물리 엔진이 엉망이야.”
한시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비틀거렸다. 뿌리 계단을 한참 올라온 지금, 주변 풍경은 더 이상 숲이 아니었다.
발밑으로는 까마득한 지상이 장난감처럼 보였고, 주변에는 잘려 나간 바위 조각들이 중력을 무시한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Environment Effect: Low Gravity (0.3G)]
[Skill Active: High Ground (Lv.1)]
고도 상승으로 인한 시야 확장 및 연산 속도 200% 증가.
역설적이게도 몸은 휘청거리지만, 시우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높은 곳에 올라오자 [하이 그라운드] 스킬이 발동되어, 떠다니는 바위들의 이동 패턴과 바람의 벡터값이 수식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좋은데? 꼭 꿈속을 걷는 기분이야!”
엘라는 둥실 떠오르는 스커트 자락을 잡으며 겅중겅중 앞서 나갔다.
그녀가 발을 디딜 때마다 랜턴의 빛 가루가 별똥별처럼 흩어졌다.
“조심해, 엘라! 거기서부터는 맵이 끊겨 있어.”
시우의 경고대로, 거대한 뿌리 계단은 구름층 바로 아래서 뚝 끊겨 있었다.
그 너머 하늘성 성문까지 가려면, 허공에 불규칙하게 떠다니는 ‘부유석’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야 했다.
문제는 그 돌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Object: Floating Rock_A04]
[Status: Blinking (Rendering unstable)]
어떤 돌은 1초마다 투명해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어떤 돌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저길 건너가야 한다고? 바람이 너무 세서 밀려날 것 같은데.”
엘라가 랜턴을 높이 들어 앞을 비췄지만,
빛은 거센 바람에 흩어져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아니, 바람은 패턴이 있어. 그리고 내 눈엔 ‘착지 가능한’ 좌표가 보여.”
시우가 노트를 펼쳤다.
평소라면 손이 떨려 못 썼겠지만, 지금은 두뇌 회전이 빨라지며 손놀림도 기계적으로 정교해졌다.
그는 빠르게 떠다니는 돌들의 주기를 계산했다.
“엘라,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타이밍 게임이야. 내가 ‘점프’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뛰어야 해. 알겠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믿을게, 파트너!”
엘라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점프 자세를 취했다.
“3, 2, 1… 지금!”
엘라가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0.3G의 저중력 덕분에 그녀의 도약은 비행에 가까웠다.
그녀가 착지하려는 순간, 비어있던 허공에 거짓말처럼 바위 하나가 ‘렌더링’되며 나타났다.
‘타-악’
엘라가 안전하게 착지했다.
“우와! 딱 맞았어!”
“다음은 11시 방향, 회전하는 돌! 2초 뒤에 평평한 면이 위로 올라와. 뛰어!”
시우는 자신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엘라의 뒤를 따라 가볍게 도약했다.
그의 눈앞에 경로를 표시하는 가이드 라인(Guide Line)이 파란색 실선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거대한 먹구름 데이터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구름 속에서 노이즈가 섞인 까마귀 떼 같은 형체들이 튀어나왔다.
[Enemy: Glitch Crows]
[Threat Level: Low / Quantity: High]
“귀찮은 것들이 꼬였네. 엘라, 방어해!”
까마귀들이 시우를 향해 데이터 파편을 발사하듯 돌진했다.
시우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피했지만,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저리가, 이 나쁜 데이터들아!”
엘라가 랜턴을 휘둘렀다.
[별빛 섬광]이 터지며 까마귀들을 쫓아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엘라가 딛고 있던 부유석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꺄악!”
엘라의 몸이 허공으로 미끄러졌다.
아래는 끝없는 추락이었다.
“엘라!”
시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렸다.
[하이 그라운드]의 연산 능력으로 낙하 지점을 예측했다.
그는 떨어지는 엘라의 손목을 낚아채고, 반대쪽 손으로 지나가던 다른 부유석의 모서리를 꽉 잡았다.
“잡았다…!”
시우의 팔에 무리가 갔지만, 저중력 상태라 버틸만했다.
두 사람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경이 비뚤어진 시우와 눈이 동그래진 엘라.
“휴… 심장 떨어질 뻔했네.”
엘라가 멋쩍게 웃으며 시우의 손을 고쳐 잡았다.
“심장 대신 HP가 떨어질 뻔했지.
꽉 잡아, 위로 끌어올릴 테니까.”
시우는 끙 소리를 내며 엘라를 바위 위로 끌어올렸다.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바로 눈앞, 구름이 걷히며 거대한 하늘성의 성문이 위용을 드러냈다.
성문은 고대 문양과 전자 회로가 뒤섞인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Location Discovered: The Sky Castle – Main Gate]
[Access Denied: Key Required]
“도착했어… 그런데 문이 잠겨 있네.”
엘라가 거대한 문을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우는 성문 옆에 붙어 있는, 마치 카드 리더기처럼 생긴 석판을 들여다보았다.
“물리적인 열쇠가 아니야. 이건… 암호(Code)야. 그것도 아주 복잡한 고대 언어로 된.”
시우가 펜을 돌리며 눈을 빛냈다. 탐구왕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엘라, 네 랜턴 좀 비춰봐. 이 문양들, 왠지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역시 시우는 똑똑하다니까!”
구름 위, 별과 데이터가 흐르는 성문 앞에서 소년은 노트를 펼치고 소녀는 빛을 비췄다.
굳게 닫힌 하늘성의 비밀이 풀리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