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소설] 데이터 노이즈 너머의 왕국 Episode #6

등장인물

한시우

엘라

데이터 노이즈 너머의 왕국 Episode #6

[에피소드: 무한 루프의 계단과 그림자 에코]

장소: 하늘성 상층부 연결 통로 (Data Stream Spiral)
시간: 시스템 시간 불명 (System Time: NaN)

“이상해. 아까 그 깨진 모니터, 벌써 세 번째 보는 것 같지 않아?”

엘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선형으로 꼬인 데이터 케이블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 배경은 마치 고장 난 TV 화면처럼 회색 노이즈가 비 내리듯 흐르고 있었다.

시우는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는 펜으로 계단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네 말이 맞아, 엘라. 우리 제자리걸음 중이야.”

[Current Altitude: 3,500m]
[Vertical Velocity: +5m/s]
[Actual Displacement: 0]

“수치는 올라가고 있는데 실제 좌표는 그대로야. 전형적인 ‘무한 루프(Infinite Loop)’ 함정에 걸렸어.”

시우가 안경 너머로 주변 코드를 스캔했다. 계단의 알고리즘이 꽈배기처럼 꼬여, 특정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영원히 40층과 41층 사이를 반복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무한 루프? 그럼 우린 여기서 평생 계단만 오르다 굶어 죽는 거야?”
엘라가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으려 할 때였다.

스으으…
벽면의 노이즈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며 나왔다. 그림자는 꿀렁거리는 액체처럼 뭉치더니, 곧 두 사람과 똑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Enemy Detected: Shadow Echo (Doppelganger)]
[Attribute: Despair / Copycat]

“굶어 죽게 놔두진 않을 모양인데.”

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그림자 시우’가 손에서 검은 데이터 단검을 던졌다.

“피해!”
엘라가 반사적으로 랜턴을 휘둘러 단검을 쳐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데이터 조각으로 흩어졌다. 그 뒤편에는 눈이 텅 빈 ‘그림자 엘라’가 기괴하게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캬아아-“
그림자 엘라가 지르는 비명은 소리가 아닌 충격파였다. [Mental Shock] 디버프가 두 사람을 덮쳤다.

“으윽…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시우가 귀를 막으며 비틀거렸다. 정신력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시우! 정신 차려! 저건 가짜야!”
엘라가 랜턴의 빛 출력을 높여 그림자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빛에 타들어 가면서도 다시 재생되었다. 루프(Loop) 공간이라 적들도 계속해서 ‘새로 고침(Refresh)’ 되고 있었다.

“엘라, 듣고 있어? 저 녀석들을 쓰러뜨리는 건 의미가 없어! 이 공간의 ‘규칙’을 깨야 해!”

시우는 고통을 참으며 노트에 빠르게 수식을 적었다. 그림자 시우가 다시 단검을 던지려 하자, 엘라가 몸을 날려 시우 앞을 막아섰다.

“내가 막을 테니까, 넌 빨리 방법을 찾아! 해킹이든 뭐든 하란 말이야!”

엘라의 랜턴에서 뻗어 나온 빛의 사슬이 그림자들을 묶었다. 하지만 힘겨워 보였다. 그림자 엘라의 힘은 엘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하이 그라운드] 스킬을 억지로 발동시켜 시야를 확장했다. 반복되는 계단의 패턴 속에 숨겨진 ‘조건문(Conditional Statement)’을 찾아야 했다.

‘분명 어딘가에 탈출 구문이 있을 거야. 개발자가 숨겨놓은 백도어(Backdoor)가…’

그때 시우의 눈에, 계단 난간에 아주 작게 새겨진 붉은색 글씨가 들어왔다.

[IF (Hope > Fear) THEN BREAK; ELSE GOTO START]

“찾았다. 조건문이야!”

시우가 소리쳤다.
“엘라! 이 함정은 ‘공포’를 먹고 자라나! 네가 겁을 먹을수록 그림자는 강해지고 계단은 끝나지 않아!”

“뭐? 하지만 나랑 똑같은 괴물이 덤비는데 어떻게 겁을 안 먹어!”
엘라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림자 엘라의 손톱이 엘라의 드레스를 찢고 지나갔다.

“네가 진짜니까!”
시우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저건 그냥 데이터 찌꺼기일 뿐이야. 넌 아까 서버실에서 네 ‘과거’를 받아들였잖아! 넌 백업 데이터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현재’의 엘라라고!”

시우의 외침에 엘라가 멈칫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초록빛으로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난 숲의 가이드 엘라야. 가짜 따위한테 길을 내줄 순 없지.”

엘라가 랜턴을 가슴 앞으로 당겼다. 랜턴 속에 있던 [기억의 조각]이 반응하며 따뜻한 빛이 전신을 감쌌다.

“사라져, 이 가짜들아!”

파아아―!
이번 빛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니었다. [희망(Hope)] 값이 [공포(Fear)] 값을 초과하자, 시스템이 반응했다.

[Condition Met: Hope > Fear]
[Executing Command: BREAK LOOP]

콰직! 쨍그랑!
공간을 감싸고 있던 회색 노이즈 벽이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났다. 무한히 반복되던 계단의 위쪽이 뚫리며, 진짜 하늘이 보였다. 재생되던 그림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억… 허억… 끝났어?”
엘라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시우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의 안경에 표시된 고도계가 다시 정상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응. 루프가 깨졌어. 이제 진짜 꼭대기 층이야.”

시우는 노트에 [약점: 심리적 변수 통제]라고 적으려다 멈췄다. 대신 짧게 한 줄을 적었다.
[파트너: 용감함 (Lv. Max)]

“가자, 엘라. 이제 정말 보스전이야.”

두 사람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데이터 파편들을 밟으며, 마지막 남은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 거대한 황금색 문 너머에서 불길하고 웅장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Approaching Final Sector: The Throne of Bug Queen]
[Battery Status: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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